티스토리 뷰
책을 읽다 보면 뜻하지 않게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있다. 2025년 1월, 유홍준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읽던 중 홍세화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홍세화 선생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인터넷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찾아보다 대표작으로 알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거창하게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에서 알게 된 이름이 궁금했고, 그 궁금증을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책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예기치 않은 연결이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의 삶을 발견하고, 그 삶을 거울삼아 내가 살아가는 시대까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선배들의 이야기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혹은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경험한 선배들은 과연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지금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기까지, 그들은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을 견뎌내야 했을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그런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주는 책이었다.
홍세화는 1979년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관광안내원과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긴 망명 생활을 이어갔고, 그과정에서 겪은 고단한 삶과 치열한 생각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망명'이라는 말을 역사책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추상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책 속 삶을 따라가다 보니 망명은 한 사람의 일상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었다. 익숙한 고향과 가족, 친구들, 자신이 살아온 사회를 뒤로한 채 낯선 이국땅에서 삶을 다시 꾸려가야 하는 일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고 언어를 익히며 낯선 이들과 관계를 맺는 한편, '왜 내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했을 것이다. 책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통과해 온 한 인간이 매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택시운전사'라는 제목 뒤에 숨겨진 삶
책 제목만 보면 빠리에서 택시를 운전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안에는 한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세월,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시간. 그리고 그 고단한 삶을 지나며 프랑스 사회를 관찰하고 자신이 떠나온 한국 사회를 성찰한 기록이었다.
택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작은 사회다. 운전자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서 그들의 말투와 표정, 생활 방식, 고민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된다. 홍세화 선생은 택시라는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여러 모습을 관찰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출신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달랐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한국 사회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올렸을 것이다. 낯선 사회를 경험하는 일은 단순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사회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시선이었다. 자신이 속했던 사회를 떠나 다른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는 빠리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경험을 통해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똘레랑스',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똘레랑스는 단순히 상대방의 의견을 참고 들어주는 태도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배척하거나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태도에 가깝다. 이 개념은 책이 출간된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오히려 사람들의 의견이 빠르게 나뉘고, 온라인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쉽게 공격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의 다름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났을 때 얼마나 여유 있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낯선 사회에서 다시 바라본 한국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홍세화 선생은 프랑스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곳에도 문제는 있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있으며,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과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읽는 동안 여행과 이주의 차이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여행자는 잠시 낯선 곳을 탐색하고 돌아오지만, 이방인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 언어가 서툴러도 생활을 이어가야 하고, 은근한 차별과 외로움을 마주하며 견뎌야 한다. 그러한 이중의 시선이 있었기에 그의 글은 단순한 해외 생활기를 넘어 깊이 있는 사회적 기록이 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선배들'을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홍세화 선생 한 사람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많은 선배들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보다 먼저 고민하고, 때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고,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삶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생각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쉽게 평가할 때가 있다. 왜 그렇게까지 힘든 선택을 했을까, 조금 더 편한 길을 택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홍세화 선생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과 현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일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고, 때로는 외로움과 불안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겼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졌다. 한 사람이 겪은 삶이 기록으로 남으면,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조금이나마 그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이 시대의 기록이 될 때
이 책을 읽으며 개인의 삶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는 보통 큰 사건과 연도, 유명한 인물 중심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실제로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한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뉴스의 한 줄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홍세화 선생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개인의 시간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낯선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의 내가 선배들에게 할 수 있는 말
1995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을 2025년에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감사였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은 내가 그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힘든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싶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신념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쉽지 않은 현실 앞에서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위해 자신의 청춘과 삶의 일부를 내어준 사람들. 그들에게 늦게나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지금의 우리가 그들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들이 겪었던 두려움과 외로움, 선택의 무게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을 남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고, 앞으로의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남겨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것들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원하는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의 삶과 사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이런 일들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사회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여전히 차별과 갈등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선배들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꿈꾸었던 더 나은 사회에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아직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듣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때때로 '감사할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기 전까지 나는 홍세화 선생의 삶을 깊이 알지 못했다. 유홍준의 책에서 우연히 이름을 발견했고, 궁금해서 찾아 읽은 한 권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한 사람의 삶을 읽었을 뿐인데, 그 사람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까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보다 먼저 어려운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먼저 살아낸 선배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25년 1월, 우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결국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보내는 존경으로 남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홍세화 선생을 한 권의 책을 쓴 작가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에는 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낸 힘이 있었다.
그 질문은 지금의 나에게도 이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의 다름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내가 누리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앞선 세대가 남긴 고민을 나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이 책이 남긴 질문들은 아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책 정보
| 구분 | 내용 |
| 제목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 지은이 | 홍세화 |
| 출판사 | 창비 |
| 초판 출간 | 1995년 |
| 분야 | 인문·사회, 자전적 에세이 |
| 내가 읽은 시기 | 2025년 1월 |
이 책은 빠리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에세이면서, 한 사람이 자신의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낯선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시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현재가 어떤 사람들의 노력 위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내게 그런 책이었다.
'인생 & 힐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1·2』 서평 |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 (0) | 2026.08.16 |
|---|---|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서평 | 과거와 현재를 잇는 편지가 만들어 낸 따뜻한 기적 (0) | 2026.08.04 |
| 『오베라는 남자』 서평 | 까칠한 오베가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된 이유 (1) | 2026.08.02 |
| 『모순』 서평 |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으니 다르게 보인 양귀자의 인생소설 (0) | 2026.07.23 |
| 『오즈의 의류수거함』 서평 | 버려진 옷 사이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서로를 살게 하는 마음 (0) | 2026.07.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