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약 냄새가 나던 책 한 권2017년 2월이었다.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으셨다가 퇴직하신 한 노신사에게 책 두 권을 선물 받았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과 권비영의 『몽화』였다. 추운 어느 날, 그분은 두 권의 책을 서류 봉투에 가지런히 넣어 건네 주셨다. "읽어보세요" 짧은 말과 함께 돌아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으로 돌아와 서류 봉투를 열었을 때 조금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책에서 먼저 느껴진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좀약 냄새였다. 아마 책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넣어두셨던 모양이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 냄새에는 시간이 배어 있는 듯했다.누군가 여러번 책장을 넘겼을 수도 있고, 오랫동안 책장 한쪽에 보관해 두었을 수도 있다. 새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2022년 6월, 회사 동료의 소개로 **『파친코』**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동료가 영상을 통해 알게 된 『파친코』이야기를 해주면서 책으로 읽어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당시에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동료가 추천해 준 책이라는 이유로 관심이 생겼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점을 찾아봤는데 당시에는 책을 쉽게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중고책으로 『파친코』 1권과 2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그렇게 두권을 나란히 놓고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파친코』는 이민진의 장편소설로, 이미정이 옮겼으며 문학사상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현재 널리 알려지 Apple TA+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하다. 『파친코』를 추천해준 동료도 Ap..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작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 『토지』 다. 수많은 인물과 긴 세월의 이야기를 담아낸 대작을 통해 박경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박경리 작가를 처음 떠올릴 때 소설 『토지』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펼쳐본 책은 소설이 아니라 한 권의 시집이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사이판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박경리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도 사이판에서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잘 아는 어린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그때는 단순히 궁금했다. 장편소설을 써온 작가가 시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
김탁환 · 이원태 지음 | 돌베개 ※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소장하고 있는 『대장 김창수』표지와 내면 직접 촬영본광복절에 다시 꺼내 든 『대장 김창수』광복절을 앞두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전부터 책장 한쪽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대장 김창수』. 책 제목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김구'였다. 하지만 표지에는 익숙한 이름 대신 **'김창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김창수. 백범 김구가 되기 전, 그가 사용했던 이름이다. 이 책을 처음 구입했던 것은 2018년 1월이었다. 당시에도 '김창수'라는 이름이 낯설었다. '김구 선생에게도 김창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구나.' 그리고 8년이 지난 2026년. 광복절을 앞두고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 문학동네 * 스포일러가 포함된 서평입니다. 이 글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요 내용과 인물,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책2024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한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강의 작품 가운데 내가 이전에 읽었던 책은『소년이 온다』였다.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도 책장을 덮은 뒤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소설이었지만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
영화로 먼저 만난 군함도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군함도』를 읽게 된 계기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군함도는 단순히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 아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탄광에서 노동해야 했던 역사의 공간이었고, 영화 속에서 그려진 사람들의 삶은 보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오히려 군함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마음이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들여다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소재를 다룬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1권과 2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군함도라는 공간이 주는 ..
김진명 『고구려』1~7권을 직접 읽고 남긴 역사소설 서평 학창 시절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고구려'라는 이름을 많이 접했습니다. 미천왕,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왕의 이름과 주요 업적을 외우고 시험을 준비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대부분 연도와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으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고구려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사소설입니다. 교과서처럼 역사를 설명하는 책은 아니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당시의 권력 관계와 전쟁, 국가의 성장 과정,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
김훈 작가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책2022년 김훈 작가의『하얼빈』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고민 없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역사 속 인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 김훈 작가의 작품에서 느꼈던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인 안중근 의사를 김훈 작가는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체포된 뒤 재판을 받고 1910년 3월26일 순국했..
시간이 흘러 다시 펼쳐본 한 권의 책어떤 책은 읽는 순간보다 시간이 지난 뒤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저에게는 그런 책입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무거웠고,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 사회적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 같은 책인데도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소설 속 사건과 인물들의 아픔이 먼저 보였다면, 이번에는 그 시간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소년이 ..
평소처럼 책을 고르다가 예상하지 못한 책을 만났다책을 고를 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에게 김진명 작가가 그런 작가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도, 단순한 역사책과는 다른 긴장감과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인상적이어서 이전부터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었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김진명의 『세종의 나라』**였습니다. 이번 작품의 소재가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사실 세종대왕과 한글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이미 배웠고, 매일 한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