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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난 곳은 책장이 아니라 TV 방송 화면이었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그는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말을 돌리기보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모습은, 평소 말 한마디를 내뱉기 전 상대의 기분을 몇 번이고 다듬는 저에게는 부러우면서도 인상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2020년 8월 30일, 서가에서 우연히 그의 산문집 『살고 싶다는 농담』(웅진지식하우스)을 발견했습니다. 출간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던 그날,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의 제목이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절박하고 진지한 고백 뒤에 붙은 '농담'이라는 단어. 절망의 기로에서 농담처럼 무심하게 던지지만, 그 속에는 역설적으로 살고자 하는 가장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강한 울림을 받았습니다.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책 앞표지와 뒤표지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웅진지식하우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를 직접 촬영했습니다.

 

1. 시련의 무게를 인정하고 건네는 진솔한 위로

방송 속 허지웅이 날카롭고 분명한 논객이었다면, 이 책 안에서 만난 허지웅은 커다란 생사의 시련을 통과한 뒤 삶의 가장 가느다란 결까지 가만히 보듬을 줄 아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은 흔히 접하는 에세이처럼 무작정 "힘내라"거나 "모든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식의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         불행과 고통의 인정: 살다 보면 내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행이 있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인정합니다.

·         그럼에도 살아가는 태도: 삶의 가혹한 시련 앞에서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25편의 담담한 글로 이야기합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은 결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버텨온 시간 뒤에는 나를 걱정해 준 이들과 곁을 지켜준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있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2.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바꿈과 수용, 그리고 분별의 지혜

책 속에 수록된 여러 문장 중에서도 제 마음에 가장 오랫동안 깊은 파동을 일으킨 것은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살아가며 크고 작은 난관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어떻게든 상황을 회피하거나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정작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평온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미처 배우지 못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시도가 두려워 바꿔야 할 상황 앞에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였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인생 예순을 살아온 지금에 이르러서도 삶은 여전히 어렵고 낯설기만 합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저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문을 접한 이후로 저는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제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3. '살고 싶다'는 마음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살아가는 이유'나 '살고 싶다'는 의지를 원대하고 거창한 목표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삶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힘은 뜻밖에도 아주 작고 소소한 일상 속에 존재합니다.

1.    소소한 하루의 누적: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읽는 시간, 가족과 둘러앉아 나누는 소박한 식사,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여유.

2.    숨 쉴 틈을 주는 농담: 삶이 지나치게 무겁고 가혹할 때, 모든 것을 진지하게만 받아들이면 영혼이 먼저 지쳐버립니다. 그럴 때 슬그머니 던지는 작은 농담 하나가 숨을 들이쉬어 올릴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결국 삶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오늘 허락된 하루를 견디어 내며 내일로 걸어가겠다는 가장 다정하고도 단단한 삶의 서약이었습니다.

 

도서 상세 정보 요약

구분 내용
도서명 『살고 싶다는 농담』
저자 허지웅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일 2020년 8월 12일
분야 에세이
나의 독서 기록 2020년 8월 30일

 

글을 마치며

2020년 8월 30일에 적어둔 독서 날짜를 가만히 짚어보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봅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지나온 삶의 궤적도 달라졌지만, 이 책이 전해주는 고요한 위로는 여전히 변함없이 가슴을 울립니다.

지금 당장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내일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펼쳐 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이라는 고단한 여정을 다정하게 이어나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