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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먼저 기억에 남아 있던 사람

허지웅이라는 이름을 처음부터 책으로 만났던 것은 아니다.

나는 TV방송을 통해 그를 먼저 알게 되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말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런 모습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하고 솔직하게 느껴질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 거북하거나 날카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좋았다.

나는 원래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 아니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혹시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허지웅이라는 사람에게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저 사람은 자기 생각을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구나.'

그것이 내가 방송에서 허지웅을 바라보며 가졌던 첫인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느 날 서점에서 그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살고 싶다는 농담』**이었다.

 

2020년 8월 30일, 서점에서 만난 제목

내가 책을 메모해 둔 기록을 다시 확인해 보니 이 책을 만난 날짜는 2020년 8월 30일이다.

책이 출간된 날짜는 2020년 8월 12일이니, 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던 셈이다.

 

그날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허지웅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왔던 것 같다.

살고 싶다는 농담.

 

참 이상한 제목이었다.

'살고 싶다'는 말은 너무 진지한데 그 뒤에 '농담'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살고 싶다는 것이 농담일 수 있을까.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너무 간절한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아마 그 제목에서 그런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별일도 없는데 마음이 무겁고,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은 일 하나가 유난히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날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이 제목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표지를 바라보고, 작가의 얼굴을 바라보고, 다시 제목을 바라봤다.

그리고 책을 집어 들었다.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책 앞표지와 뒤표지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웅진지식하우스. 제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를 직접 촬영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과 읽은 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방송에서 보았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말을 잘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

조금은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사람.

그런 이미지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방송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허지웅을 만나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면, 책에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나온 시간과 주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힘내라'고 말하는 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에는 힘든 일이 있고, 불행한 일이 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저자가 큰 시련을 겪은 뒤 삶을 바라보게 된 생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감정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출판사와 서점의 책 소개에도 이 책을 25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에세이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의 삶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고, 나를 걱정해 준 사람들이 있고,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지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주변 사람, 관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있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한때 내 삶의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책 한 권을 읽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더 이상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힘든 일이 하나 지나가면 이제는 괜찮겠지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를 지나왔으니 이제는 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려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일이 찾아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는 별일 없이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말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려움이 없는 삶'보다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설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문, 니부어의 기도

나는 이 책에서 여러 이야기와 문장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책에서는 이 기도문이 금주협회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러 형태로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이 기도문을 읽었을 때는 짧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을수록 그 안에 내가 살아오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먼저 어떻게 피할까, 어떻게 해결할까를 생각했다.

그 일을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았고,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둘을 구분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힘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것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굳이 바꾸어 더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가 잘되지 않으면 어떡할까.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시도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새로운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바꾸어 볼 수 있는 용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그래서 마지막에 나오는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예순을 살아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용기를 내어 바꾸어야 하는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때로는 바꿀 수 있는 일인데도 두려워서 그대로 두고, 반대로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는 일을 붙잡고 마음을 힘들게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구나.

 

60년을 살았다고 해서 삶의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험이 많아지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살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금 더 살아가면 나도 언젠가는 알게 될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일이 그저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바꾸어야 하는 일인지.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나도 조금씩 갖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기도문을 알게 된 이후에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예전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가?'

그리고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살고 싶다'는 말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는 흔히 '살고 싶다'는 말을 아주 큰 의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좋아하는 책을 한 권 읽는 것.

가족과 밥을 먹는 것.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는 것.

여행을 계획하는 것.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

어쩌면 이런 아주 작은 일들이 모여 '살고 싶다'는 마음을 만들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 제목의 '농담'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삶이 너무 무거울 때는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주 작은 농담 하나가 숨을 돌릴 틈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살고 싶다'는 말을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농담처럼 말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 농담 속에는 누구보다 진지한 삶에 대한 의지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제목을 다시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것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곁에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그 고마움을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면 내가 혼자서 견뎌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떠올랐다.

 

책을 읽은 동안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도 제목이 남는 책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다시 꺼내 볼 때가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면 책의 내용보다 먼저 그 책을 언제 샀는지, 어디에서 샀는지,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이 책을 2020년 8월 30일이라는 날짜를 기록해 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서점에 들어갔을까.

무슨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멈췄을까.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 다시 그 제목을 바라보니 예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은 같은 책을 읽어도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다른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삶의 시기에 따라 같은 책도 다르게 읽히는 것처럼.

 

삶에서 지나온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에 같은 문장도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은 날짜를 책에 적어두는 편이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꺼내 보았을 때, '2020년 8월 30일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말

『살고 싶다는 농담』은 내게 삶이 늘 평탄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으로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힘든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에 자신만의 무게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의 삶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좋아지지 않아도 된다.

모든 문제에 답을 찾지 못해도 된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내일 다시 눈을 뜨는 것.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펼치는 것.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렇게 하루를 하루씩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 자체가 삶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제목이 오래 남았다.

살고 싶다는 농담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아주 진지한 말이다.

책을 읽었던 2020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이 달라졌고, 그동안 경험한 일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문장에서 멈추게 될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제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나는 이 책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책 정보

구분 내용
도서명 『살고 싶다는 농담』
저자 허지웅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일 2020년 8월 12일
분야 에세이
나의 독서 기록 2020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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