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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지음 · 김영사
책을 고를 때 제목보다 한 문장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슬픔의 모양』을 선택했던 것도 그랬습니다.
책을 처음 만난 것은 2025년 3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장을 다시 펼쳐보니 그때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나와 꼭 닮은 어느 가족의 기쁨과 슬픔." 그 문장에 마음이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아마도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좋을 때만 가족인 것도 아니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만 가족인 것도 아닙니다. 가까워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무심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슬픔의 모양』을 읽는 동안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딘가에서 한 번쯤 마주했거나, 앞으로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진 날, 가족의 시간이 달라졌다
『슬픔의 모양』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달라진 가족의 시간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리고,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힘든 시간을 견뎌냅니다. 간병이 길어지면서 감정도 조금씩 예민해집니다. 누군가는 더 가까이 다가가고, 누군가는 잠시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말 한마디가 마음에 뾰족하게 걸리기도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족들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서로의 뒤엉킨 감정까지 견뎌내야 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석원 작가는 그 과정을 거창하거나 아름답게 꾸미지 않습니다. 아픈 부모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솔직히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답답함과 미안함, 때로는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은 복잡한 마음도 공존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해서 더 깊게 마음에 남습니다.
늙어가는 부모님과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자녀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늙어가는 부모님과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자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만큼 자녀인 우리도 나이를 먹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든든하게 내 곁에 계실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아플 때도 부모님은 당연히 알아서 이겨낼 것 같고, 힘든 일이 생겨도 금세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상적인 동작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몸의 작은 변화에 민감해지며,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도 늙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부모님도 늙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아픈 과정입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가족이라고 해서 항상 화목하고 좋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서로의 무심함을 견뎌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서운함을 느껴도 그냥 참아내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내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잠시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야지." 스스로에게 이 말을 되뇌며 마음에 생긴 생채기를 다독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이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결국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서게 됩니다. 특히 부모님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동안 마음에 쌓여 있던 서운함이나 미안함, 원망 같은 감정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이해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고, 한 순간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진 복잡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슬픔은 하나의 모양으로만 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제목인 『슬픔의 모양』이라는 말의 의미를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는 단 하나의 정해진 모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눈물로 솔직하게 쏟아내는 슬픔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참아내는 슬픔도 있습니다. 괜히 화를 내며 감추려고 하는 슬픔도 있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은 슬픔도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고 지켜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끝내 곁을 지키고, 지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부모님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고, 너무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 쉽게 상처받습니다.
결국 가족의 슬픔은 단순히 슬픈 감정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사랑과 미안함, 원망과 이해, 지침과 책임감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입니다.
『슬픔의 모양』은 바로 그런 솔직한 마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찾아올 이야기
이 산문집이 가슴 깊이 남았던 이유는 결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건강하신 부모님도 언젠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 늙어가실 것이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자녀에게 그런 부모의 위치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 평소에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그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깨워줍니다.
그렇기에 『슬픔의 모양』은 단순히 슬픈 가족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책을 덮으며
『슬픔의 모양』을 모두 읽고 나니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가족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소중한 관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때로는 가장 멀리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내가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서로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알아가면서도 끝내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길고 긴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늙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녀의 마음은 더욱 복잡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나를 일방적으로 돌봐주셨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 역할과 시선이 조금씩 교차하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부모라는 한 인간의 삶을 조금씩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2025년 3월. 그때 저는 '나와 꼭 닮은 어느 가족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한 문장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을 덮은 지금은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이 책 속 가족의 모습이 나와 꼭 닮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견디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서로 조금씩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의 모양』 도서 상세 정보
| 구분 | 내용 |
| 도서명 | 『슬픔의 모양』 |
| 저자 | 이석원 |
| 출판사 | 김영사 |
| 장르 | 한국산문 · 문학에세이 |
| 발행일 | 2024년 11월 30일 |
| 쪽수 | 300쪽 |
| ISBN | 9791194330813 |
※ 아래 도서 정보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에 기재된 정보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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