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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설정과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소설이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직접 촬영
직접 소장하고 있는 『인생은 소설이다』앞·뒷면과 함께 소장 중인 기욤 뮈소의 다른 작품들을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던 책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진다. 기욤 뮈소도 나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2021년 6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인생은 소설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조금 낭만적인 제목처럼 느껴진다.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 이야기일까?' 처음에는 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흔들리고,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가 뒤섞인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야기는 현실일까, 소설일까?" 가볍게 읽어보려고 시작했던 책이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도 복잡했던 이야기보다 한 가지 질문이 더 오래 남았다. '내 인생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딸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소설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은 작가 플로라 콘웨이다. 플로라는 세상에 이름을 알린 유명 작가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언론에 거의 공개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큰 사건이 발생한다. 세 살 난 딸 캐리와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중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문과 창문은 닫혀 있고,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도대체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처음에는 단순한 실종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선다. 플로라가 살아가는 세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을 예상했다. 그런데 기욤 뮈소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또 다른 작가인 로맹 오조르스키가 등장한다. 그리고 독자는 조금씩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플로라 콘웨이의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 속 이야기이며, 그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가 로맹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책을 읽는 방식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플로라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로맹의 현실과 플로라가 존재하는 소설 속 세계를 함께 따라가야 한다.

현실과 허구.

작가와 등장인물.

창조하는 사람과 창조된 존재.

이 경계가 계속해서 흔들린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몇 번이나 앞부분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방금 읽은 장면은 어느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었지?',  '이 인물은 현실의 사람일까, 소설 속 인물일까?'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혼란 자체가 이 책이 의도한 재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솔직히 말하면 『인생은 소설이다』는 나에게 아주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현실과 소설 속 이야기가 교차하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야 했다. 특히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읽어야 해서 중간중간 잠시 책을 덮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복잡함이 단점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삶을 따라간다. 기뻐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의 선택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인물의 삶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렇다면 작가는 등장인물의 삶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등장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야기를 그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바로 그 질문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던지고 있었다.

 

작가에게 인생을 맡긴 등장인물

책을 읽으면서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우리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삶을 만들어낸다. 어디에서 태어나게 할 것인지, 누구를 만나게 할 것인지, 어떤 일을 겪게 할 것인지,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까지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떨까. 물론 현실의 삶과 소설 속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나 역시 이미 정해진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때문에, 과거의 선택 때문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내 삶의 이야기를 내가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 인생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인생은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바꿀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선택도 되돌릴 수 없다.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고 해서 그 장면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까지 이미 쓰여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생각이 좋았다. 과거의 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나는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남은 인생까지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생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아직 마지막 페이지를 쓰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음 페이지를 바꾸는 것

물론 현실에서는 과거를 다시 쓸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상처받았던 순간도, 실수했던 선택도, 후회되는 말도, 그대로 나의 삶에 남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의미까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어떤 실패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경험으로 남기도 한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던 일이 훗날에는 나를 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페이지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페이지를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장 개인적으로 얻은 생각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된 작품

기욤 뮈소의 작품은 이야기의 속도가 빠르고 반전이 많은 편이라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생은 소설이다』역시 그런 장점이 있다. 다만 이번 작품은 단순히 사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끝나는 소설은 아니었다. 작가와 소설의 관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담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소설'처럼 느껴졌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작품 속 반전보다도 내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책을 덮은 뒤 내게 남은 질문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을 보고 단순히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제목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이야기라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직 쓰지 않은 페이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오래 미뤄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크게 바꾸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를 조금 다르게 살아볼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을 다시 쓴다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오히려 현실적인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은 아닐 것이다. 이미 지나간 페이지는 그대로 두더라도, 앞으로의 페이지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이제 이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인생은 한 번 완성되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마지막 페이지가 올 때까지 계속 써 내려가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오지 않았다는 것.

 

책 정보

구분 내용 
제목 『인생은 소설이다』
저자 기욤 뮈소
옮긴이 양영란
출판사 밝은세상
출간일 2020년 11월 24일

 

한줄평

현실과 소설의 경계는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는 내가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을 남겨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