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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 유혜인 옮김 · 도서출판 북플라자
※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봉제인형 살인사건』의 주요 사건과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참고해 주세요.

『봉제인형 살인사건』
한여름이 되면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공포물이나 스릴러가 생각날 때가 있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읽으며 더위를 잠시 잊어보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둘러보다가 한 권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바로 다니엘 콜의 **『봉제인형 살인사건』**이다.
사실 이 책은 처음 읽은 책이 아니다.
2019년에 이미 한 번 읽었던 책이다. 이번 여름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오래전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포물이나 잔혹한 스릴러물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무서운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이 많은 소설 역시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2019년의 나는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
'봉제인형'과 '살인사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한 제목 안에 들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기에 살인사건을 봉제인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 궁금증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런던에서 발견된 기괴한 시신
이야기는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살인사건과는 달랐다.
발견된 시신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신체 일부를 이어 붙여 하나의 시신처럼 만들어 놓은 기괴한 형태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른바 **'봉제인형 살인사건'**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수사가 시작되지만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희생자들이 누구인지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여섯 명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관계가 있는지도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던 중 형사 울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에는 여섯 명의 이름과 살해 예정일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 명단의 마지막에 적힌 이름이었다.
울프.
범인이 다음 희생자로 지목한 사람이 바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울프에게 이 사건은 단순히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가 아니게 된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사건이 되었고, 동시에 과거의 잘못된 선택과 마주해야 하는 사건이 된다.
범인을 잡은 것과 죄를 심판하는 것은 다른 문제
울프에게는 잊지 못할 과거가 있었다.
과거 그는 연쇄방화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나기브 칼리니를 체포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칼리니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고, 그는 풀려나게 된다.
울프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사람이 법의 심판을 피해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울프는 결국 법정 안에서 칼리니를 폭행했고, 그 결과 정신병원에까지 갇히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울프에게 중요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법으로는 범죄자를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범죄자를 심판할 권한까지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울프는 결국 위험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범죄자를 심판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살인청부업자에게 칼리니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한다.
울프와 살인청부업자와의 조건은 칼리니뿐만 아니라 법망을 빠져나간 다른 관련자들까지 포함해서 살해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살인 청부 계약은 성사되었다.
하지만 계약이 이루어진 뒤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후 칼리니가 다른 사건으로 유죄가 입증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울프는 이미 체결된 살인 청부 계약을 취소하려 한다.
그러나 살인청부업자와의 계약은 중간에 쉽게 파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계약에 따라 여섯 명의 대상자가 차례로 희생되고, 그들의 신체가 이어 붙여진 채 발견된다.
그리고 그 명단의 마지막에는 울프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처음에는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시작했던 선택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정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분명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개인이 직접 그 사람을 처벌해도 되는 것일까.
울프가 처음 살인청부를 결심했을 때, 그의 분노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잡았던 범죄자가 법정에서 풀려났고, 이후 또 다른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 이유가 정당해 보인다고 해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범죄가 된다.
울프는 범죄자를 잡은 형사에서 결국 살인을 의뢰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 역시 범죄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씁쓸하게 다가왔다.
잘못된 선택은 그 순간에는 최선의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특히 감정이 극도로 격해진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분노와 복수심이 판단을 대신하게 되면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행동조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398페이지를 단숨에 읽게 만든 흡입력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약 398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다.
결코 짧은 분량은 아니다.
그럼에도 2019년에 이 책을 읽었을 당시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평소 스릴러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도 다음 사건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범인은 누구인지, 여섯 명의 희생자에게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왜 울프가 마지막 희생자로 지목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범인을 쫓던 형사였지만 어느 순간 자신 역시 사건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울프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울프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동시에 이런 질문도 하게 된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내가 직접 심판해도 되는 것일까?'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남는 책
2019년에 처음 읽었을 때와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 느낀 점은 조금 달랐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아마 사건 자체의 긴장감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사건보다 울프의 선택과 그 결과가 더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의 분노와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그 사람을 단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앞서는 순간일수록 한 번 더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메시지는 끔찍한 살인사건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선택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우리 역시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화가 나는 순간도 있고, 억울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 감정에 휩쓸려 바로 판단하기보다 조금은 차분하게 생각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분명 내가 평소 즐겨 읽는 장르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책 제목에 이끌려 선택했던 2019년의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고 나니 단순히 '무서운 스릴러 소설'로만 기억했던 책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잔혹한 사건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이었다.
아직 무더위가 남아 있는 올여름.
평소와 조금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보고 싶거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스릴러를 찾고 있다면 **다니엘 콜의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잊고 있던 더위 대신, 조금은 서늘한 긴장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